(東아시아 陶磁器)1. 土器.陶器의 時代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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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아시아 陶磁器」
1. 土器·陶器의 時代 ①中國 중국에서 도자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팔천년이 넘는다. 처음에는 초보적 수준의 거친 粗陶가 제작되었으나 곧 기술적 진보를 거듭하면서 입자가 곱고 붉은 색 胎土로 만든 紅陶가 시작되었다. 黃河 以北에 있는 裵李岡·磁山문화의 홍도가 확산되면서 특색있는 도기가 제작되는데, 그 가운데 陝西省·河南省·甘肅省?靑海省 등에서 출토하는 仰昭文化期의 彩陶는 정돈되고 정교한 형태, 적색과 흑색·백색으로 그린 신비한 추상형의 문양으로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신석기시대 후기에 시작되는 龍山文化期의 黑陶 가운데 특별히 우수한 것은 놀랄만큼 얇고 예리하게 성형한 후 마연하고 不完全 燔造法을 써서 윤기 있는 칠흑색을 나타내었는데, 도기라는 소재가 이 시기에 와서 다양한 기법을 연구하며 미적 감상의 대상으로 인식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低火度 酸化焰 軟質陶器에서 高火度의 還元焰 硬質陶器로 수준을 한 단계 높여 灰陶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노력의 결실이었다. 특별히 중국 최초의 국가인 商 時代에 순백의 백토로 정교한 문양을 새긴 白陶를 만든 것이나, 표면에 灰釉를 씌워 고화도에서 구워 낸 原始靑磁에 가까운 灰釉陶가 시작된 것은 특기할만한 중요한 사건들이다. 이러한 도기문화의 흐름은 역사시대까지 지속되었다. 陶器는 秦?漢時代 이후, 隋·唐時代까지 副葬을 위한 明器를 포함하여 대부분은 일상용품으로서 중요하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鉛釉陶는 원래 서아시아의 전유물이었지만 戰國·漢代 초기부터 부장용 명기와 같은 용도로 특수하게 제작되었다. 뒤이어 後漢代에 녹색유와 갈색유를 함께 씌운 二彩로 발전하고 唐代 7세기후반에 소위 唐三彩로 완성하게 된다. 당삼채는 수도인 長安과 洛陽을 중심으로 8세기 초기에 성행하지만 安?史의 亂(755)에 의해 귀족문화가 급속히 몰락하면서 사라지게 되었다. ②韓國 한국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빗살문토기는 시베리아 남단과 몽고 북부를 지나 한반도의 동북지방을 통해 들어 온 것으로, 구대륙 북부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소위 빗살문토기 문화권에 속한다. 물론 최근에 한반도의 동남해안지방에서 발견된 隆起文을 장식한 특별한 토기들이 빗살문토기보다 先行하는 것임이 밝혀져 있으나, 이것이 자생적인지 아니면 다른 문화권에서 전파된 것이지 분명하지 않아서 기원을 추적하기 어렵다. 이렇게 시작은 중국과 직접 관련되지 않았지만, 중국에서 고대국가가 건설되고 그 세력이 주변으로 널리 퍼져나가면서 한반도는 그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청동기시대에는 빗살문토기를 계승하여 보다 기능적이고 견고한 無文土器로 발전하여 일상용기로 널리 제작되고 있었다. 일부 중국 신석기시대의 간접적 영향이라고 생각되는 紅陶와 黑陶와 같이 특수한 제작기법을 응용하여 만든 副葬用 明器도 제작되고, 露天窯에서 불 때는 과정에 별도의 조작으로 만들어진 가지무늬토기와 같은 특수한 기법도 시도되고 있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酸化焰의 軟質土器들이며 아직까지 한반도 안에는 高火度로 구운 단단한 硬質陶器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없었다. 그런데 기원전 3-2세기에 중국에서 戰國·漢代의 鐵器文化와 함께 전해진 高火度 還元焰 燔造法과 물레를 이용한 打捏技法의 灰陶技術이 도입되면서 한 차원 높은 硬質陶器 단계로 올라설 수 있었다. 이 새로운 회도기술은 짧은 기간에 빨리 발전하여 다양한 조형으로 완성을 보게 되는데, 기원후 3세기까지의 과도기를 거쳐 硬陶로 발전한다. 이것을 우리는 회청색경질토기(灰靑色 硬陶)라고 부르며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까지를 대표하게 된다. 軟陶와 硬陶 등 無釉陶가 아주 다양화되고 폭 넓게 확산된 것에 비하면 施釉陶의 발전은 뒤늦었고 그 범위도 상당히 좁은 편이다. 그 중 灰釉陶는 8-9세기경으로 추정하는 慶州 金丈里와 靈岩 鳩林里, 保寧 眞竹里 등의 陶窯址에서 일부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硬質陶器의 단계에서 9세기에 중국의 靑磁生産體制를 도입하였기 때문에 灰釉陶가 확산될만한 시간적 여유는 많지 않았다. 鉛釉陶는 삼국시대 후기에 기술을 터득하고 있었지만 호화스런 唐三彩를 모방하지 않고 주로 葬儀用 骨壺와 王城의 막새기와나 裝飾塼 등 인체와 직접 접촉하지 않는 특수한 용도에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다. ③일본 일본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라고 말하는 繩文土器가 있다. 이것은 지금으로부터 만이천년전에 제작된 것으로 측정되었는데, 일본에서 자생적인 것인지 아니면 대륙이나 태평양 연안을 따라 전파된 것인지 아직 분명히 밝혀지진 않았다. 彌生時代에 와서 중국으로부터 한반도를 거쳐 청동기와 함께 벼농사법이 전해지고 韓國式 無文土器가 전해지면서, 고대적 성격의 복잡한 조형과 장식이 사라지고 실용성 높은 기종들이 제작되기 시작한다. 古墳時代 초기에는 彌生土器의 계보를 이은 土師器라는 붉은색 토기가 중심이 되었지만, 뒤에 硬質의 須惠器가 유행하면서 음식용?저장용의 기종을 만들고 土師器는 조리용기나 허드레 그릇을 제작하여 재질과 기능에 따라 구분되어 있다. 須惠器는 5세기부터 11세기 平安時代 중기까지 가장 기본적인 일상용기였다. 대표적 窯址는 大阪府의 陶邑窯와 愛知縣의 猿投窯이다. 綠釉와 三彩는 일본 최초의 施釉陶이다. 나라시대에 唐三彩의 영향으로 유행하였지만, 최초에 계기가 된 것은 7세기말경 한반도로부터 들어 온 新羅의 綠釉技法과 관련될 가능성도 있다. 灰釉陶는 8세기경 自然釉를 이용한 原始灰釉에서 발전하여 9세기초에 본격화되었다. ④동남아시아 동남아시아는 지리적으로 중국과 인도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이 지역의 토기문화도 일찍이 발달하였지만 아직 상세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시대와 지역에 따라서 중국문화·인도문화·자체 고유의 문화가 복잡하게 공존하고 있어서 특별하고 다채롭다. 베트남의 경우, 後漢代 灰陶와 灰釉陶 계통이 제작되고 유품도 많은 편이다. 그 가운데 북부지역의 회유도는 질과 형태에서 중국에 크게 뒤지지 않지만 남방문화적인 특별한 장식과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6세기경에 中國 越州窯의 영향으로 靑磁系統의 灰釉陶가 제작되었으며, 베트남의 독자적인 양식은 뒤에 李朝時代(1010~1225)부터 시작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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