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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의 도자)3. 타이의 도자
  • 작성자한국도자재단
  • 등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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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족은 중국 서남부에서 8세기부터 시작하여 수세기에 걸쳐 내려 온 이주민으로, 그 일부가 챠오프라야강 유역에 이르러 크메르족과 몬족들 사이에서 잠시동안 섞여 살았던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리고 이 지역에 대한 크메르 왕국의 지배가 약해지자 1238년 타이족에 의한 도시국가 스코타이(Sukhothai)왕국을 건설했다. 한편 북부타이에도 치앙마이를 왕도로 하는 란나.타이왕국이 13세기 말(1296)에 일어났다.  14세기가 되어 챠오프라야강의 하류에 아유타야왕국이 세워지고 약화된 스코타이왕국을 흡수했다. 아유타야와 란나.타이 왕국은 대립하면서 양대세력으로 병존했으나 16세기후기에 미얀마의 격렬한 침공을 받고 란나.타이왕국은 멸망하고 아유타야도 일시적으로 미얀마에 점령되기도 하였다.

타이의 도자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은 사완카로크(Sawankhalok)도기와 스코타이도기로서, 이들은 무역국가 아유타야를 통해 널리 해외로 수출되었다. 인도네시아·필리핀 뿐만아니라 멀리 일본과 이짚트에도 수출되었다.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것은 청자와 철화(鐵畵)청자로서 맑은 바다의 색과 같이 푸른 사완카로크청자의 아름다움과 자유분방하게 그려진 스코타이 철화는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사완카로크도기의 가마터는 현재 산가로크 주변에는 없으며 보다 북쪽인 시샷챠나라이의 남부에 있다. 이 대규모 가마터군의 본격적 조사가 1980년대에 타이와 호주 공동으로 실시되어 많은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졌다. 초기의 현상은 크메르도기와 란나.타이 도기와의 관련이 느껴지며 거기서 서서히 기술상의 진전을 거두어 대규모 제작지로 성장한 과정이 밝혀졌다. 이 가마터의 최하층에서 발견되는 가장 초기 작품은 짙은 청록색과 황록색을 띠는 회유도의 얕은 발과 흑유도의 항아리이다. 태토는 굵은 모래가 많이 섞인 검은색 흙으로 사완카로크 청자와는 거의 비슷하지 않다. 얕은 발은 입과 입을 맞물려 굽는 독특한 재임법을 썼는데, 이것은 뒤에 설명할 란나.타이의 산캄펜(Sankampaeng)요와 같은 수법이며 또한 발의 형태 등도 이와 비슷하다. 

이러한 것에서부터 아름다운 사완카로크 청자로 진행되는 다음 단계로는 검은 흙에 백토를 분장한 후 회유를 씌운 것이 나타난다. 철화가 그려지는 것도 이 단계부터이며 이것을 철화청자라고 부른다. 이 회유는 충분히 청자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청록색을 띠고 있다.  또한 이 시기에 스코타이 요는 시샷챠나라이 요에서 분리되어 철화와 백유도(白釉陶) 전문의 가마로 개요(開窯)했음이 밝혀졌다.

아름다운 사완카로크 도기가 등장하는 것은 15세기 중반으로 추측된다. 이것은 동남아에서 출토상황과, 특히 침몰선에서 유물 인양 상황에서 서서히 밝혀지고 있다. 그외에 시샷챠나라이 요에서는 철화·백유·갈유·백유갈채 등 다양한 수법으로 다양한 그릇과 건축 장식품을 만들었다. 높은 대를 붙인 발같은 특수한 형태도 볼 수 있는데, 청자에는 음각[刻花]문양을 넣은 대반(大盤)과 작고 둥근 귀가 달린 쌍이호(雙耳壺)가 많으며 철화에는 크고 작은 다양한 합(盒)이 눈에 띈다. 백유갈채는 사원 장식을 위한 것으로 생각되는 특수한 형태의 신수(神獸)와 신상(神像) 등의 모습을 한 건축장식이 많이 알려져 있다.

아유타야왕조를 통해 널리 해외로 수출된 사완카로크 도기와 스코타이 도기와는 달리 북방 타이의 도자기는 규모도 작고 생산량도 많지 않았다. 예외적으로 카롱(Kalong)요와 상캄펜(Sankampaeng)요는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어 몇 개의 우수한 작품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1980년대 중반에 타이·미얀마 국경의 산지에서 대량의 북방 타이 도자가 발견되자 이 지역의 도자기에 대한 관심이 급속히 높아졌다. 송(宋)·원(元)시대의 중국도자와 사완카로크 청자 등과 함께 출토된 점으로 미루어 제작연대는 14~16세기로 파악되고 있다. 현재는 카롱과 상캄펜 등 이외에 팡·파야오·산사이·난과 같은 가마터가 알려져 있으며 이들은 북부타이로 뻗는 산간·계곡 별로 산재하면서 각각 독특한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대표적인 가마는 카롱·상캄펜·팡요(窯)일 것이다. 카롱은 극히 얇은 바탕에 백토분장을 한 백자와 추상적 문양의 철화로 알려져 있는데 긴장감 있는 형태과 참신한 그림 문양이 매력적이다. 팡요는 사완카로크 청자에 가까운 본격적인 청자를 만들었는데 일상품인 항아리·병·발·반 등을 만들었다. 청자의 색채는 다양하며 옅은 것에서 올리브 그린색까지 있으며 안바닥에 쌍어문(雙魚文)을 도장으로 찍은 얕은 발이 전형적인 형식이다. 또 백토분장한 후 철화로 쌍어문이나 화문을 그린 발과 접시 등이 많다.

북타이에 있는 여러 가마의 얕은 발은 구울 때 바닥(底)과 바닥(底), 입과 입을 맞물려 재임하는 경우가 많으며 따라서 바닥과 입[口緣]에는 유약을 씌우지 않는다.  이 수법이 앞서 말한 시샷챠나라이 초기에도 발견된다. 북타이의 요들과 사완가로크도기와 스코타이도기 사이에 어떤 방식이든 영향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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