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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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질그릇-옹기와 함께 한 현대도예가 「조정현」 1940년 3월 10일 생. 조정현은 대학시절 흙을 빚어 불에 구어 낸다는 신비한 세계에 매료되어 도예의 길로 다가섰다. 물레 다루는 법을 익히는 데 열중하던 그는 스승인 황종구를 만나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대학원 학위논문의 연구대상을 「고려 상감청자」로 할 만큼 상감기법과 무늬에 심취하였다. 상감에 심취하여 꾸준한 노력을 계속하던 그는 1969년 국전에서 대상을 받기도 하였다. 이 결과 조정현은 황종구와 황종례를 이어 우리 전통기법을 이용, 현대도예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한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1970년대 후반 미국 남 일리노이 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한 조정현은 그곳에서 외국의 것을 탐닉하는 데 그치고 만 것이 아니라 옛 화려한 도자전통을 가진 나라, 한국의 도자가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였다. 그 결과 자신이 현재 하고 있는 작품이 우리의 전통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느냐는 물음에 봉착하였고 그 결과 우리의 것에 자신의 감각을 더하여 새로운 것을 만드는 지금의 작업에 이르게 되었다. 당시 외국의 선진도자 흡수에 열을 올리고 있던 주변과는 달리 그는 오히려 한국의 것에 몰두하면서 자신의 색깔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무조건적인 서양의 것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주장이 있는 특색이 강한 작품이 대접을 받고 자기 체질이 진하게 비추어진 것을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그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는 미국에서 돌아와서 그간 연구했던 상감기법을 이용한 작품들을 선보였고 그것은 외국의 굉장한 관심을 이끌어 내었다. 오히려 그들은 중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참신하고 새로운 느낌을 준다고 칭찬했다. 이를 계기로 상감기법 구사가 그의 대명사처럼 되었고 그 기법을 배우고 싶다는 요청에 따라 십여 년 넘게 수시로 미국에 가서 그들을 가르치고 있다. 상감기법을 위주로 계속 작업을 해오 던 그는 우리 질그릇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박물관과 우리나라 각지에 있던 귀한 옹기들을 찾아 방방곡곡을 찾아 다녔다. 이러한 노력 끝에 그는 상당한 자료를 모을 수 있었고 이것은 그녀의 작품에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그간 모은 자료를 가지고 옹기의 색, 기형, 만드는 법 등 다양한 정보와 지식들을 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자기 것으로 어느 정도 소화하자 이제 그는 작품에 자연스럽게 우리의 질그릇을 응용할 수 있게 되었다. 외국과 활발한 교류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소개할 기회를 많이 가지게 된 조정현은 우연한 기회에 「환경 도예」에 대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외국에는 공공시설, 기업들이 환경미술에 일찍히 눈을 떠서 그 중요성을 익히 인식하고 있으며 그 역시 서구의 이러한 미술환경에 도예의 역할을 감지하게 된 것이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후배들에게 도예가 기여하는 넓은 세계가 있다는 점을 알리면서 후배들이 좀더 자신의 표현영역을 확장 할 수 있는 길을 알려 주었다. 그는 또한 우리의 문화유산 중에서 환경도예에 적용될 수 있는 아이템을 찾아 국내자료를 살펴 본 결과 꽃담을 주목하고 꽃담의 색, 무늬, 재질 등을 현대화하여 건축 도자와의 연계가 이루어질 수 있는 길을 모색하였다. 그 결과 1980년대 중반 신축중인 여의도 럭키금성사 사옥건축에 아이디어를 제공한 신영훈 선생의 주선에 따라 도안을 설계하고 동료인 강석영 교수가 제작과 시공을 하여 속칭 여의도 쌍둥이 빌딩의 담장 치장을 이루어 내었다. 그러나 조정현은 이에 멈추지 않고 질그릇과 건축 도자에서 함양된 맛을 형태에 부여하고 상감기법으로장식하는 새로운 작업을 보여주었다. 그는 삼국시대 도기에 표현된 투공(透孔)이나 긴 목과 굽등을 이용하면서 조형상 부족한 부분을 찾아나갔다. 보완을 위하여 삼국시대 질그릇에서 볼 수 있는 고리를 부착시키는 등 삼국시대 우리 토기의 역사와 특징을 연구하여 해마다 작품의 형태와 장식을 달리하여 항상 어제와 다른 새로운 것을 찾아나가는 진정한 작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81년 미국 웨인 스테이트 대학 초청교수로 `동양의 도예`에 관해 강의한 것을 비롯하여 `89년까지 남 일리노이대학, 엘로우먼트 공예학교, 피터스벨리 공예학교 객원교수, 하버드대학 연구교수를 역임했다. 또한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에서 `69년 국무총리 상을, `79년 문공부장관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 다수의 수상경력이 있으며 `76년 미국에서의 첫 개인전을 필두로 지난 `92년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개인전을 가진 바 있다. <고려상감청자 국화무늬 연구> <한국환경도예론을 위한 시고> <세계의 환경도예 연구>를 비롯한 7편의 논문과 <꽃담> <한옥의 건축도예와 무늬> 등을 저술한 바 있는 그는 금년 이화여자대학교 도예과 교수를 정년퇴직하였고 현재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운영위원, 한국 현대 도예가회 회장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약 력::: 1940년 생 학력 - 이화여대 미술대학 대학원 졸업 M.A. (1966) - 미국 남 일리노이 대학교 대학원 졸업 M.F.A. (1976) 교육경력 - 교수 : 이화여대 조형예술대학 도예과 (1971-현재) - 객원교수 : 미국 남 일리노이 대학교 (한국의 도예 강의) (1981-1989 하기 대학) - 연구교수 : 미국 하버드 대학교 (북미주 건축도예연구) (1988-1989) 연구경력 논문 - 한국도예계의 현황과 전망 (국립현대미술관) (1986) - 한국환경도예론을 위한 시고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 논총) (1986) - 한국 도(陶)와 자기(磁器)의 정형고찰(定型考察)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 논총) (1988) 저서 - 꽃담 (대원사) (1989) - 한옥의 건축도예와 무늬 (기문당) (1990) 회원 - 한국공예가회 회장 (1986-1987) - 한국현대도예가회 회장 (1992-1993) 전시회 - 개인전 10회 (1976-현재) - 단체 초대전 100회 이상 작품소장 -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 서울시립미술관 - 국립현대미술관 - 미국, 남 일리노이대학 박물관 - 미국, 아시안 아트미술관 - 미국, Pacific Asia Museum - 영국, Victoria and Albert Museum - 영국, British Museum - 벨지움, Musee Royal De Marimont - 캐나다, Royal Ontario Museu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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