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티 우드만(Betty Woodma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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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티 우드만(Betty Woodman) 용기(用器)의 사회적 의미와 미학적 형태, 역사 등을 재조명하여 새로운 도자기 미학을 제시하는 도예가 베티 우드만은 용기(用器)의 사회적 의미와 미학적 형태, 역사 등을 재조명하여 새로운 도자기 미학을 제시하는 도예가다.1930년 미국 코디네이컷주 노스워크(Norwalk, Connecticut)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공예가였던 아버지의 공방에서 뛰어놀며 미술에 대한 흥미와를 재능을 키워나갔다. 유난히 손재주가 좋았던 우드만은 고등학교 시절 도예수업을 들으며 흥미와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게 되어 도예가로서 자신의 진로를 정했다. 1948년부터 알프레드대학교에서 입학하였고 재학 중 특히 도자사에 관심을 가졌다. 1950년 졸업과 동시에 산업도자제조공장에 취직하였는데 몇 년간 그곳에서 얻은 경험과 기술은 작업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또한 직장을 재직 중 콜로라도 대학(Fine Arts Department of the University of Colorado)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1952년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마욜리카(majolica) 도자기들을 보았고 그 안에 현대 도자의 발전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다고 확신했다. 돌아와 마욜리카 외에 중국 도자, 당삼채, 일본의 우키요에, 페르시안 텍스타일과 고대 그리스 암포라 도기Greek Amphora)등 다양한 문화예술을 자신의 작업에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P&D 운동(장식미술운동)이 활발해지면서 공예계의 재료들을 재해석하는 등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그에 영향 받은 베티 우드만도 1981년 조이스 코즐로프Joyce Kozloff와 함께 뉴욕의 네이지 갤러리Tibor de Nagy Gallery에서 장식을 강조한 공동작업을 선보였다. 그 전시는 베티 우드만이 용기를 만들고, 조이스 코즐로프가 그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서 이듬해 신시아 칼슨Cynthia Carlson과 함께 뉴욕에 있는 셜리 굿맨 재단센타 Shirley Goodman Resource Center의 패션기술협회에서 연 공동 작업과 동일한 컨셉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작업은 기존의 이미지를 파괴하는 것이었고, 곧이어 사람들의 비난이 잇달았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은 P&D 운동으로 인해 베티 우드만이 미국의 도예계에서 영향력 있는 작가로 급부상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980년대 초기 그녀는 원통의 용기에 손잡이를 붙이고, 같은 원통에 용기와 손잡이의 그림자를 형상화한 판을 붙이는 작업을 하였다. 더 발전된 모습으로 그녀는 용기에서 손잡이를 떼어내어 벽에 붙이는 작업을 시도하였는데. 벽에 걸린 조각들은 마치 몸체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이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몸체와 조각의 빈 공간으로 인해 오히려 형태가 강조된다. 우드만의 작품 형태는 이탈리아의 에트루리아Etruria 도기인 암포라(Amphora)와 매우 유사하다. 암포라 항아리는 목이 좁고 커다란 손잡이가 양쪽으로 삐죽이 달려있는데, 이러한 형태는 198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 그녀의 작업에서 꾸준히 발견된다. 또한 작업은 베개모양의 주전자와, 정면성을 강조한 용기, 그리고 용기를 이용한 설치작업이 주를 이룬다. 그녀는 용기란 항상 담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그것은 역사 속에서 뿌리깊이 내려온 것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그녀의 작품은 음식을 담거나, 꽃을 꽂을 수 있는 용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용기들은 단지 용(用)이라는 기능의 개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용기(pot)는 실제로 사용될 수도 있으며 장식이라는 개념 자체로 이해될 수도 있다. 용기과 공간과의 관계는 용기(pot) 자체의 독립적인 형태만큼 중요하다. 그녀는 이 공간을 평면화하여 여러 개의 유니트를 만들고 그것을 벽에 걸거나 용기에 접합한다. 베티 우드만은 1951년부터 매년 여름마다 이탈리아의 안텔라Antella에서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 이외의 기간 동안은 미국의 뉴욕(New York)에서 작업한다. 그녀가 다루는 색채들은 원색이 주를 이루지만 장소, 가마, 유약, 그리고 흙에 따라 미세한 차이가 있다. 뉴욕과 안텔라에서 진행하는 각 작업들은 서로 다른 유약을 사용한다. 뉴욕에서는 화장토를 바르고 초벌을 한 상태에서 언더글레이즈underglaze로 드로잉을 한 후 투명유를 시유해 1050°산화 소성을 하지만 안텔라에서의 작업은 초벌과정을 생략하고, 납(lead)이 첨가된 유약을 사용한다. 각기 다른 장소에서 만들어내는 작품은 두 종류의 문화를 담고 있으며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은 형태뿐 아니라 색채로도 표현된다. 그녀는 70세가 넘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얻은 명예에 집착하지 않고 끊임없는 탐구를 계속해 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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