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의 현대적 해석-황종구(黃鍾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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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의 현대적 해석-황종구(黃鍾九) [황종구(黃鍾九), 1919~2003] ※1919년 서울출생, 1939~1년 일본 세또 요업학교 별과(別科)수학 후 1947~51년까지 개성공립요업학교 요업과 교사로 재직. 1959~84년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교 교수 역임. 1958년 당시 이화여자대학교 총장 김활란 박사는 수차례의 외국 시찰을 통해 여러 나라의 대학에서 자국의 민족문화 예술을 발전시키기 위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이에 이화여대에서도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전통도자기의 연구, 개발을 위한 관련기관 설립을 계획하고 당시의 예림원 미술학과장 김인승에게 제안하여 미술학부 교수 심형구와 황종구와 함께 연구소 설립을 추진하였다. 당시 전기 절연체 공장을 경영하던 황종구는 김활란 총장의 부탁으로 이화여대에 ‘도자기실’(이화여자대학교 부설 도예연구소(梨花女大附設陶藝硏究所)를 처음에는 도자기실이라고 불렀다.)을 설치하고 그에 대한 모든 준비과정을 책임 하에 수행하고 도자기 제작을 시작하였다. 1959년 교수로 임용되면서 생활미술과에 도예강좌를 신설하고 도예연구소를 중심으로 청자, 백자, 분청사기 등의 전통 도자기 연구와 재현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도자기 실습에 필요한 기본시설들을 고루 갖추어 나갔다. 음대 보일러실 옆에서 3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시작한 이래 1959년 5월에는 미대 뒤편 언덕에 28평 정도의 도자기공장을 신축하고 8월에는 한번에 크고 작은 1,500개 정도를 구울 수 있는 장작가마를 축조함으로써 본격적인 도예수업과 연구소의 활동이 이루어졌다. 이 가마는 대학에 지어진 최초의 것으로써 이를 계기로 다른 대학에도 가마가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1959년 11월 첫 가마에서 나온 청자, 백자, 분청사기 등 2,000여 점을 일반에 공개한 이래 1961년의 첫 바자회부터 매년 창립기념일과 성탄절에 동창회, 임직원 및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등 단순한 대학 내 연구물로서 도자제작에 머무르지 않고 일반인들에게 도자기를 인식시키고 판매망을 만들어 가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이 곳에서 만들어진 도자기들이 당시로는 희귀한 제품들이면서 양질의 것이었기 때문에 상당한 호응을 받았으며 도예연구소를 활성화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1962년 9월 황종구는 더 큰 규모의 실습실과 도예연구소 작업실을 마련하였고 1964년 3월 소성실과 함께 황종구가 설계한 2루베(2㎥) 정도의 도염식 석유가마를 짓고 본격적으로 청자를 제작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해 11월, 신문회관에서 <황종구 도자전>이 열려 석유가마에서 구워낸 청자를 선보이기도 하였다. 이 가마가 완성되면서 이화여대의 도예교육과 관련하여 도예연구소의 활동은 더욱 활기를 띠었고 상품으로서의 전망이 어느 정도 서자 인천을 비롯한 소규모 공장에서도 청자들을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어려서 부친으로부터 도자기 제작기술을 배워 전통적인 청자제작 기술을 알고 있던 황종구는 이화여대의 도예교육과 도예연구소 그리고 도자기 공장의 운영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는 초대 연구소장으로 임명되면서 1977년 4월 문교부로부터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도예연구소를 정식 인가를 받아서 1979년 이후 매념 학술지 『도예연구』를 발간하는 등 1984년 퇴임할 때까지 대학도자교육과 연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황종구는 이화여자대학교 도예연구소를 세우는 등 현대도예라는 말이 보급되기 이전부터 도예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청자를 비롯한 전통도자기의 가치를 오늘에까지 이르게 하였으며 도요지 발굴과 학술지발간을 통해 우리나라 도예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황종구는 철유 등 다양한 유약을 이용한 작품들을 제작하기도 하였으나 그의 대표적인 작품은 역시 청자다. 그는 칠보향로, 어룡주전자, 거북주전자, 과형주전자, 과형병, 표형주전자, 잔과 잔대, 죽순 주전자, 정병 등 다양한 전통도자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이천에서 활동하고 있던 해강 유근형과 더불어 대학에서 청자재현을 이루어낸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가 청자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려는 노력은 이화여자대학교 도예연구소 석유가마를 이용해 제작한 전통미를 살린 커피세트와 현대적인 감각의 커피세트를 제작했던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다. 그의 청자들은 주로 흙상감과 백상감, 진사가 어울려 자연의 모티브를 그대로 화폭에 담듯이 도자기 표면에 담아내고 있다. 그는 주로 잉어, 연꽃, 들꽃 등 대게 정적인 주제들을 즐겨 사용하였지만 그의 작품에는 전통적인 문양을 과감하게 해석하여 도자표면을 가득채운 실험적인 작품도 눈에 많이 띤다. 그의 이러한 현대적 청자재현의 노력은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1962년과1980년 화병으로 특선을 수상하는 등 청자작품재현과 재해석으로 많은 이들의 인정을 받았다. 그는 지난 2003년 7월, 84세의 일기로 타계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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