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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전문자료

한국도자기의 역사 (Ⅲ)-시대별
  • 작성자한국도자재단
  • 등록일
  • 조회수13912



선사시대


한반도에서 처음으로 토기를 만들어 쓴 것은 기원전 4000-3000년경의 신석기시대이다. 농경 사회가 이루어지면서 용기(容器)의 필요성이 생겨났을 것이다. 이 시기 전형적인 토기는 빗살무늬토기로 강변이나 해안의 약간 경사진 모래사장에서 주로 발견된다. 빗살무늬토기의 태토는 운모(雲母)가 많이 섞인 사질(沙質) 점토이며 형태는 밑이 뾰족하거나 둥글고 구연은 넓게 직립해있다. 청동기 시대로 전환하면서 토기는 민무늬 토기로
 
발전해간다. 기형은 보다 기능적이 되어 속이 깊은 발, 목이 긴 단지와 같은 모양이 증가하고 기형이 다양해지는데 기형의 다양화는 농경사회가 안정되고 사회양상이 복잡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제작기법은 테쌓기 방법이 주로 사용되었으며 노천에서 구워 그다지 단단하지 못하다.

 

 

삼국시대


 삼국시대로 이르면 비로소 번조시설인 가마가 등장하여 밀폐된 지하굴식 혹은 터널식 가마가 만들어져 고화도 토기를 제작할 수 있는 밑바탕이 마련되었다. 이시기 토기는 표면의 색조가 적갈색에서 회청색 혹은 회색으로 되며 소성온도가 높아져 쇠소리가 나는 단단한 경질토기 또는 석기질의 상태로 나아갈 수 있었다. 삼국시대는 후장풍습이 있어서 수많은 유물이 고분에서 출토되고 있다. 각종항아리, 고배, 감대 등 그릇형태 이외에 상형토기 등 기종과 표현기법이 다양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7세기후반-10세기초)에는 토기에서 자기로 이행되는 기반을 확립하면서 부장용도기보다는 실생활용기로서 변모하였다. 또한 당대(唐代) 도자기의 영향으로 구연부에 변화가 오고 몸체의 선도 곡선위주로 되며 문양은 다양한 형태의 인화문이 등장한다. 통일신라시대의 국제성(國際性)으로 인한 다양한 중국자기의 유입과 사용하고자 하는 욕구, 사회·경제적 기반의 성숙은 자기제작을 위한 밑거름이 되기에 충분하였다.

고려시대

고려는 자기(磁器)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시기이며 청자(靑磁)가 발달하고 전성기를 누렸던 시기이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졌던 도자기는 청자뿐 아니라 백자, 철유, 흑유를 비롯하여 기타 옹기, 도기류도 많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청자가 많이 만들어지기도 하였지만 고려의 최고의 기술수준과 최고의 아름다움을 지닌 도자기는 청자(靑磁)였기에 고려를 청자의 시대라고 부르는데 이견이 없다.
고려 9세기경에 중국의 월주(越州)지방의 도자기와 그 기술이 우리나라 서남해안 지역으로 많이 유입되면서 청자를 만드는 문화적 자극과 기술적 자극을 받아 청자를 생산하게 되기에 이른다. 중국으로부터 받은 번조수법이나 자기양식은 차츰 고려적으로 변화시켜가면서 인종조(12세기초)에 이르면 고려자기가 독특한 비색(翡色)청자를 완성하게된다. 
 
이후 상감기법과 문양구성이 발달하면서 철채, 청자 상감, 진사, 연리문, 철유, 백자, 백자상감, 화금자기 등 다양한 자기문화로 발전되어진다. 12세기 중엽경부터 기법이 다양해지고 문양의 비중이 커지면서 비색유약에서 유약을 맑게 개선시킨 상감청자로서 두 번째 전성기를 맞으면서 세련미를 보인다. 그러나 고려가 종교를 비롯한 정치, 사회 경제가 모두 타락하는 14세기 중엽부터 청자는 양식적으로 급속한 내리막길을 걸으며 퇴보된 모습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조선시대


 조선시대는 유교적 치국이념아래에 세워진 국가이므로 고려와는 사뭇 다른 미감과 정서로서 도자문화를 이끌어나가고 있다. 대중의 참여와 실리의 중시, 새로운 양반계층, 유학자 등장 등으로 독특한 조선문화를 이루고있다. 조선시대 도자기는 단연 백자를 위주로 하고 분청사기 역시 독자적이고도 완숙한 미의 세계를 구축하면서 백자와 분청사기라는 두 기둥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청자도 소량 만들어졌으나 백토태토에 청자유를 입혀 고려 청자와는 질적으로 다른것이다. 그밖에 자기류로 흑유(석간주), 철채, 철유자기 등도 만들어졌다. 분청사기는 앞서 퇴보된 청자를 이어받아 변모한 종류로서 백자보다 시기적으로 다소 앞서있다. 
분청사기의 종류는 문양을 넣은 기법에 따라 인화분청, 상감분청, 철화분청, 귀얄분청 등으로 나누어진다. 한편 백자는 명(明)백자의 영향을 받아 발전하며 분청사기와 함께 16세기까지 그리고 중기와 후기에는 단독으로 조선왕조 도자기의 주류를 이루었다. 특히 경기도 광주지방에 도자번조를 담당하는 중앙관청인 사옹원(司饔院)의 분원(分院)을 두어 자기번조를 담당하면서 이른바 관요체제를 구축하게 된다. 중앙관요체제아래 제작되는 도자기라는 특성은 백토의 채굴과 땔감의 조달, 도공의 확보 및 운영, 생산품의 종류, 기형의 양식 등의 다양한 측면에서 조선백자의 이해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되고 있다. 백자의 종류는 역시 문양기법에 따라 순백자(사기, 백사기), 상감백자, 청화백자(청화, 푸른사기), 철화백자, 진사백자 등으로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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