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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다완(井戶茶碗)의 전통을 따라서, 도천(陶泉) 천한봉
  • 작성자한국도자재단
  • 등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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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다완(井戶茶碗)의 전통을 따라서

도천(陶泉) 천한봉(千漢鳳)

 



[천한봉, 1933~]

 

 

도천(陶泉) 천한봉(千漢鳳)은 우리 전통 막사 발을 빚는 명인이다. 또한 그의 이름 앞에는 항상 한국 도예의 명장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천한봉은 특이하게도 지금까지 120여 차례의  전시회 중 대부분을 일본에서 열었다. 물론 국내에서는 몇 번의 전시회가 있었지만 모두 제자들과 함께 한 그룹전이나 교류전이 대부분이었다.  이것은 그의 작품이 국내보다 일본에서도 더욱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데 기인한 것이다. 실제로 문경 다기는 우리나라보다도 일본인들에게 더 유명하다. 문경에는 우리나라 전통 도예를 잇는  도예가들이 많다. 이도다완을 재현시키고 조선의 백자를 재현시키는 도예인들이 문경을 지키고 있다. 특히 천한봉 도예가의 다완을 만지는 그들의 자세는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마치 신의 물건을 보듯 감탄사를 연발하며 무릎 꿇고 앉아 두 손으로 소중히 다룬다. 일본에서는 그의 찻잔을 써보는 것이 소원이라는 차애호가가 있다는 말이 들릴 정도이다.  


 

그의 막사발은 요변기법에 의지한다. 청자나 백자가 가마 안으로 바람이 새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는데 반해 그의 분청은 가마 안팎에서 요동치는 바람으로 하여금 불의 변화를 구하는 산화염(酸化焰)방식이 다르다. 흙을 매만져 가마에 넣으면 나머지는 불이 할 따름이라는 것이다.

 

그는 문경의 태토(胎土)를 고집하는 데 이 흙은 매우 질 좋은 흙으로 알려져 있다. 철분이 풍부한 물에 섞어 반죽을 한 뒤 발물레 위에 올려놓고 지질박, 고데, 젓갈, 굽쇠 같은 재래도구를 써서 사발을 빚는다. 또한 천한봉의 독특한 작품은 전통 발물레와 독창적인 재료에서 나온다. 그는 수십 년 동안 편리한 전기물레 대신 전통 발물레를 고집해왔다. 그러나 요즈음 그는 건강상의 이유로 차그릇 등 소품은 여전히 발물레를 사용하지만, 물 항아리 등 대작은 전기물레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유약이다. 그는 반드시 떡갈나무재를 고집해 왔다. 푸른색을 내도록 하기 위해서는 떡갈나무, 희고 맑은 색감에는 느릅나무를 태운 재를 물에 섞은 식물성 유약을 쓴다. 하나부터 열까지가 모두 옛 도공들이 하던 재래식방식 그대로이다. 떡갈나무를 태운 특유의 식물성 재를 유약으로 써왔으나 최근에는 떡갈나무를 쉽게 구하지 못해 대신 사과나무를 태워 재료로 활용하고 있다.


 

그는 주로 다완과 다양한 물항아리, 단풍다기 세트, 두두옥다기 세트, 분청다기 세트 등 다기들을 주로 제작한다. 또 잎차호, 말차호, 화병, 부부잔과 문경의 전통적인 칠기 및 석간주 유약으로 만든 푼주, 건수 등 40여 가지의 다양한 작품들은 그의 왕성한 작업역량과 작가정신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특히 ‘두두옥 다기’이다. 두두옥 다기세트는 일본 차 문화의 할아버지라 할 수 있는 센노리큐(千利休.1522∼1591년)가 우리나라에서 가져가 일본에 전한 다기 중의 하나라 한다. 그런데 센노리큐 집이 생선가게.(漁漁屋)를 하였는데 일본말로 "도도야"라 하는데 도도야를 소리나는 데로 옮겨 "두두옥"이라 한다. 500년 전 이 사발의 이름이 있었을 텐데 원래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일본 이름을 빌려온 것이다. 

 사토와 철분이 많이 섞인 태토(유약을 입히기 전의 흙)로 거친 맛을 높이기 위하여 수비(정제)를 거칠게 한 것이 특징이다. 전통 등요에서 장작을 사용하였음은 물론이고 식물성 유약을 사용하여 순하면서 긴 여운의 차 맛을 느낄 수 있어 다인들이 선호하는 다기다. 지금은 1인다기. 2인 다기. 3인 다기 등으로 제작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5인 기준이 정석이다. 아마도 차를 여럿이 마시면 차가 속(俗)되어져 차 맛을 느낄 수 없다는 우리나라 근대 차 문화의 중흥조인 초의선사의 말씀에서 그 연유를 찾을 수 있다.

 

그의 다완은 차를 따르면 그릇 안에 꽃이 피어나듯 아름다운 조화를 부리는 듯 하다. 그래서 일본인들이 이 변화에 따라 사발에 '단풍잎'이니 '빗방울'이니 하는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또 구울 때 포갠 자국인 '용발'이 뚜렷하게 나 있는 것도 특징이다. 그리고 그의 다완은 바깥에 손자국이 둘러져 있고 찻잔 뒷부분에 생기는 굽을 짙은 유약으로 울퉁불퉁하게 처리한 것이 남다르다.


 

섭씨 1천300도의 장작가마 불길 속에 자신의 혼을 불어넣은 작품은 국내보다 일본에서 더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지난 76년과 77년 일본 전국 순회전시를 비롯해 지금까지 일본에서 120여 차례 개인전을 가졌고, 대다수 작품을 일본에 수출하고 있다.

 

천한봉은 자신의 작품이 일본에서 각광받는 이유에 대해 "조선시대 임진왜란 등을 통해 일본으로 건너간 국산 도자기 상당수가 일본에서 ‘보물급’으로 지정되었다. 일본인들은 이 빼어난 도자기를 가장 잘 재현한 작품으로 내 것을 꼽는다"고 했다.


 

1933년 일본 동경에서 태어나 광복을 맞던 해까지 일본에서 지내다 14세 되던 해에 한국으로 돌아와 도자기 기술을 익혔던 천한봉은 문경의 민요에서 꾸준히 작업하기 시자했던 1965년, 한일국교가 정상화된 이후 일본인들로부터 주목받기 시작하며 알려졌고 1975년, 마흔 세 살의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도자기제작 연수를 다녀오기도 하였다. 그 해 그는 토오쿄오(東京)·오오사카(大阪)·후쿠오카(福岡) 등지에서 열린 「한국문화 5천년전」에 초대출품(招待出品)하는 영예를 안았다. 그는 그밖에도 국내외 명품전(名品展)에 출품한 것을 비롯하여 KBS-TV 및 일본 NHK-TV의 네트워크를 타고 널리 소개됨으로써 평가를 받기도 했다.

 

천한봉의 작품 가운데서도 특히 찻사발을 비롯한 다기(茶器)는 토오쿄오를 비롯한 대도시 유명백화점에서 「현대고려다완명품전(現代高麗茶碗名品展」이라는 주제로 그의 작품전시회가 열리기까지 했을 만큼 일본다도계(日本茶道界)에서도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 ‘한국 도공의 정신전’(98년, 성곡미술관) ‘세계 다도문화 교류전’(2002, COEX) ‘도예 천한봉의 70년 삶’(2002, 예술의 전당) 등 제자들과 함께한 그룹전이나 교류전을 가져왔으며, 지난 95년 대한민국 도예명장으로 지정되었다.


 

56년간 우리의 막사발을 만들어온 천한봉은 “우리나라에서 건너가 일본 국보로 지정된 조선사발 즉 이도다완을 재현해 보는 것이 평생 소원”이라고 할만큼 조선사발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고 있다. 또한 경북 문경시 문경대학, 경기도 이천시 이천도예고교 등지에 강의를 나가며 후진 양성에 정열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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