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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현대도예의 아버지, 피터 불코스(Peter Voulkos)
  • 작성자한국도자재단
  • 등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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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현대도예의 아버지

피터볼커스(Peter Voulkos)

 

 

[피터볼커스, 1924~2002]

 

 

미국 몬타나주 보즈맨(Bozeman, Montana)에서 1924년 1월 29일 그리스 이민자 인 부모 밑에서 태어나 2003년 2월 16일 오하이오의 보울링 그린(Bowling Green, Ohio.)에서 78세의 일기로 타계하기까지 피터 불코스(Peter Voulkos)는 미국현대도예계에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1950년대부터 ‘도예혁명’이라 평가되는 추상표현주의를 도자에 도입하면서 미국 현대도예의 부흥을 주도하였다. 


추상표현주의는 미국에서 발생한 첫 미술사조 였다. 세계미술계를 주도하던 유럽의 예술전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전통수립을 기대하던 미국인들에게 추상표현주의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추상표현주의는 1940년대부터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등 액션페인팅 화가 및 조각가들로부터 시작하였지만 중요한 움직임은 도예가인 피터 불코스에 의해 주도 되었다.


불코스의 작품들은 잭슨 폴록의 액션페인팅과 많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는 도자기 표면에 유약 혹은 도구를 사용해 즉흥적인 선으로 이루어진 드로잉으로 인간 내면의 다양한 욕구와 원초적인 갈망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당시 화가에서 도예가로 전환한 재능 있는 작가들 중 대표적인 인물로서 불코스는 대학원 재학 당시 에서 수상하는 등 많은 국제전시와 공모전을 통해 그의 역량을 인정 받았다. 본격적으로 ‘미국 현대도예의 총아’로 주목 받기 시작한 1953년 즈음, 애쉬빌(Ashvillle)의 블랙 마운틴 대학(Black Mountain College)에서 여름강의를 하면서 존 케이지(John Cage)같은 진취적 예술가들과 교류하였고 이 강의가 끝난 그 해 늦여름, 뉴욕 방문 시 이나 <5-Spot>같은 추상표현주의 예술가들의 모임에 참가해 그들과 교류하면서 추상표현주의자로서 그의 행보는 더욱 분명해 졌다.


1954년 불코스는 로스엔젤레스로 가서 해리슨 맥킨토시(Harrison Mcintosh) 와 함께 오티스 미술학교(Otis College of Art and Design)을 설립하고 동시대의 ‘도자혁명동지’들인 폴 솔드너(Paul Soldner), 스테판 디 스테플러(Stephen De Staebler), 짐 멜쳐드(James Melchert), 론 네이글(Ron Nagle) 같은 많은 도예가들을 양성하고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다.


특히 1954년부터 1959년까지 오티스는 불코스를 비롯한 많은 작가들이 서로 동등한 입장에서 경쟁하며 아프리카미술과 히피문화, 로스엔젤레스의 자유분방한 환경과 더불어 흙의 잠재적 가능성을 실험하는 장이었다.


1958년 캘리포니아 버클리로 옮겨간 뒤(1985년 그는 다시 버클리 강단에 다시 서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그는 흙보다는 브론즈를 많이 다루었는데 이러한 영향으로 1989년에는 아트워크 재단(Artworks Foundry)으로부터 의뢰 받아 버클리에 세워진 『시리우스 Sirius 』가 세워졌다. 그는 브론즈를 이용한 작업에 그치지 않고 1980년 중반부터 꾸준히 브론즈 고유의 재료특성을 흙의 그것과 접목시켜 ,『Ice Buckets』시리즈와 『Plate』시리즈를 구현하였다.

 

피터 불코스의 작업은 크게 세 가지 특성이 있다.


첫째, 그는 자유스러운 붓질과 날카로운 도구에 의한 드로잉을 단순화시켜 선과 색으로 인식하고 형태를 재구성했다. 그는 초기에 피카소의 도예작업을 모방하였는데 이 때, 피카소의 도자기표면에 그린 드로잉들이 도자기 고유의 형태를 왜곡한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자신의 작업에 적용하였다. 


둘째, 불코스는 하나의 작품을 제작하는 데 있어 반쯤 굳은 흙덩어리들을 해체하여 재구성하는 방식을 선택함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통일성보다는 불쑥 튀어나온 점토 덩어리들이 형성하는 다이나믹한 음률을 느끼도록 하였다.


셋째, 그의 작품은 극히 비실용적이면서도 작품의 외형은 용기의 형태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의 작품은 극히 조각적이고 구조적으로 보이나 전체적으로는 굽이나 몸체, 목부분 등 도자기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그의 작품을 조각이 아닌 도자기로서 이해해야 하는 단서다.

 

그는 암으로 인해 건강이 악화일로 이른 2002년까지도 전세계에서 열린 워크샵과 전시회를 통해 열정 넘치는 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의 이러한 행보는 현 시대인으로 하여금 그가 세계현대도예에 미친 영향과 흙에 대한 열정을 다시금 확인하게 해주었으며 그가 일생동안 추구했던 자유와 실험정신은 전세계 도예인들의 가슴에 오랫동안 존경과 흠모의 대상으로 기억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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